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독서/독서평]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by 교양없는파듀 2023. 12. 7.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07/2015070702068.html

<도서에 대하여>

 

[노인과 바다] 는 인간 의지의 세레나데, 희망을 부르는 인간의 고독한 승리에 관한 내용이며 용기, 인내 겸손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 헤밍웨이는 주인공 산티아고를 통해 신념과 용기, 강인한 인내력을 갖고 투쟁하는 자신의 인생관을 투영해냈다.

 

 

 
.

<도서 줄거리, 비유 및 상징들, 의미>

 

려 84일 동안 단 한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노인 어부 '산티아노' 는 주변 사람, 어부 선술집의 주인 등으로부터 행운이 다 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그에게도 영광스럽고 젊은 순간은 있었으나, 이젠 순탄치 않고 별 볼일 없는 어부로써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고 거대한 고기를 잡겠다는 신념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투쟁하고자 하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얻는 고통과 고난 힘겨움과 끝끝내 잃어버린 결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견디어 내며 고통을 고통으로써 고난을 고난으로써 인정하지 않는 억척스러움을 보여준다.

 

노인은 소년 '마놀린' 과 돈도 자존심도 어떠한 것도 따지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진정한 우애를 보여준다. 노인은 소년에게 어부로써의 삶과 메이저 리그를 알려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소년은 노인의 먹을거리와 잡일, 돛대를 옮겨주는 등 항해 준비를 도왔다. 소년과 노인은 같이 항해하기도 하였으나, 고기를 못잡은지 40일 쨰가 되자 소년의 아버지의 요구에 굴복하여 노인과 다른 배를 타게 되지만 노인도 그것을 이해하고 소년은 미안해한다.

 

노인은 자신이 아직 큰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소년의 응원을 받아 깊고 멀디 먼 바다로 항해한다. 어쩌면 산티아고에게 있어 어업이란 평생의 업인 동시에 우리 모두가 젊을 적의 꿈, 어쩌면 이룰 수 없는 어떠한 이상에 대한 알 수 없는 열의와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항해 과정에서 노인은 단순히 바다와 자연을 경쟁 상대로 혹은 적으로 대하는 다른 어부들과는 달리 자연 친화적이고 자연과 통합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새, 해조류, 상어, 심지어는 자신이 잡고 있는 고기 마알린과 형제라며 대화를 거는 등 자연을 의인화하여 인간처럼 대한다.

 

고기 잡이를 하다, 상처가 나 피가 흐르는 손을 바다에 담가서 치료하거나 오랜 투쟁의 끝에 에 쥐가 나 펴지지 않는 왼손을 햇볕을 받으면 저절로 펴져 원 상태로 치유될 것이라고 믿는 노인에게 바다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생명의 장소이다.

 

노인은 멀고 먼 항해에서 자신의 보트 보다 두 피트 가량 더 큰 청새치 '마알린'과의 투쟁을 시작한다. 수 일에 걸친 사투 끝에 노인은 의지와 에너지를 거의 소진했음에도 그는 남은 불굴의 정신력, 투쟁에 필요한 마지막 힘을 끌어내기 위해 과거 카사블랑카 술집에서의 흑인 장사와의 팔씨름과 자신이 응원하고 존경하던 뉴욕 양키스 야구 팀의 '다마지오' 선수를 떠올렸다.

 

팔씨름의 경우 여덟시간이 넘도록 힘의 균형, 대치 상태를 이어가며 손톱에서 피가 났음에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저녁, 새벽을 지나 일요일 아침에 시작된 팔씨름이 월요일 아침에 끝이 난다. 노인은 힘이 빠진 장사의 손을 눕히며 승리했다. 양키스 팀 '다마지오'의 경우 발 뒤꿈치 뼈가 아프고 타박상으로 인해 힘겨운 몸을 가지고 경기를 나서서 부끄럽지 않게 자기가 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자 나아간다.

 

노인은 고기와의 끈질긴 사투 끝에 다친 손과 아픈 몸을 다마지오의 발 뒤꿈치 부상과 연관지어 떠올렸다. 어쩌면 이는 일종의 상징으로서 실제 그들의 부상보다 불리한 조건, 혹은 악조건에서 얼마나 더 싸우고 버텨 나갈 수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표상과도 같다고 필자는 본다.

 

며칠이 지나 고기와의 사투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이미 잠을 못자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에 지칠 때로 지쳐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고기가 천천히 올라와 선회하기 시작하자 노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머리가 혼미해져도 다시, 눈이 가끔씩만 보이는 상태에 놓였어도 다시, 두 손이 부르트고 기절할 것 같아도 다시 작살을 꽂기 위해 고기를 배 가까이로 유도했다. 결국 노인은 과거의 긍지와 현재의 고통, 남아있는 힘을 다해 고기에게 작살을 꽂아내는데 성공한다.

 

노인은 고기를 잡는데 성공했지만 고기는 너무 커서 (나중에 작중에서는 18피트 정도로 묘사된다 -> 5m 가량) 배 안에 들이면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노인은 고기를 배 옆에 묶어놓고 돛을 펴서 집으로 항해한다. 성취감과 만족감, 고기에 대한 연민과 함께 마치 고기가 집으로 끌고 가주는 듯한 느낌을 받던 노인은 곧이어 또 다른 시련과 마주한다.

 

바로 고기의 피냄새를 맡고 달려온 상어들이다. 첫번째 습격은 작살을 통해 물리쳐내지만 상어에게 고기의 일부분을 뜯기고 말았다. 노인은 뜯겨나간 부분이 마치 자신의 일부분이 죽은 것이라도 되는 양 슬퍼하고 가슴이 아파 고기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두 번째 오는 길라노 상어와 귀상어에게 고기의 상당부분을 빼앗기고 바다를 피로 적셨다. 이 후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계속해서 다가오고 노인은 작살, 노에 묶어놓은 칼을 모두 잃고 몽둥이와 노, 아픈 몸과 다친 손을 가진 채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는 어느순간 원죄와 죄의식에 대해 생각했다. 원래 어부라는 직업에 있어 라디오도 읽을 것도 없이 항해하던 그에게는 버릇처럼 생각하는 점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한 그가 이렇게 까지 멀리 나오지 않았더라면 티뷰론 (청새치)와 자신에게 모두 좋았을 것이라며 생각한다. 노인은 그러나 후회하진 않는다. 어부로서의 본인에게 이런 투쟁과 비극은 결국 필연(必然) 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노인은 결의를 다졌지만 결국 밤 중에 상어 때에게 고기를 모두 빼앗기고 만다. 빈털털이로 온 노인은 기억 상의 정신적인 승리와 남은 청새치의 거대한 뼈 즉 업적 (레거시) 만을 얻었고 실질적인 이득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성취한 것들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노인이 돛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 중에 다섯번이나 넘어지고, 몇 번이고 쉬었던 장면을 보며 성경의 십자가를 지고 처형대로 향하는 예수의 모습이나 무거운 돌을 무한히 끌어올리는 시시포스의 신화가 떠올랐다.

 

우리의 인생도 이 처럼 무거운 비극과 고통, 실패 속에서 자신만의 발자취, 꿈을 남기기 위해 끊임 없이 자신을 내던지고 고난에 발버둥치며 사는 것이지 않을까, 이 끝에 결국 죽음에 이르기 까지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분명히 무엇인가 자신이 투쟁한 과거와 역사는 어떤식으로든 남기 마련이다.

 

정말 재밌고 교훈적이었으며 몰입감이 실로 진짜 바다 짠내가 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고전 명작이다. 어릴 적 읽고, 생각나서 처음 다시 제대로 정독해보았으나 만족스럽다.